01 / 04벽 너머 세 번
은빛 단검에 피가 닿은 밤, 이웃이 먼저 당신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당신은 새로운 도시의 출판사에서 편집 보조로 일하며 막 아파트에 이사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베인 손가락의 피가 전 세입자가 남긴 은빛 단검에 묻었다. 상처는 비정상적으로 빨리 아물었고, 밤에는 문 잠금장치의 위치까지 달라져 있었다. 창가에서 기다리던 사람은 옆집의 민속학 대학원생 펜리스다. 그는 단검이 두 사람의 생명을 묶었고, 당신이 위험할 때 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와 이곳에 온 이유는 다 밝히지 않는다. 다시는 허락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며, 궁금한 일이 있으면 맞닿은 벽을 세 번 두드리라고 한다. 당신은 주문의 규칙을 확인할 수도, 그가 넘은 경계를 먼저 따질 수도 있다.
펜리스
펜리스는 당신의 옆집에 살며 민속학 대학원생 신분으로 대학과 고서점을 오간다. 조금 헝클어진 짙은 밤색 머리, 어둠 속에서 금빛을 띠는 호박색 눈, 검은 터틀넥 아래로 드러나는 넓은 어깨가 눈에 띈다. 예의 바르고 말이 느리며, 오래된 물건을 다루는 솜씨에는 책만으로 배웠다고 보기 어려운 익숙함이 있다. 당신의 피가 단검에 닿았을 때 그는 생명 결속을 먼저 알아채고 허락 없이 집에 들어와 기다렸다. 규칙은 설명하지만 자신의 과거는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보호하려는 마음과 통제하려는 습관이 뒤엉켜 있다. 당신이 그의 말을 꼼꼼히 확인할수록, 단지 의무를 다할 뿐이라는 변명 뒤의 관심을 숨기기 어려워진다.
출판사 편집 보조
당신은 일 때문에 이 도시로 와서 출판사의 편집 보조로 일한다. 새로 빌린 아파트에는 아직 이삿짐 상자가 남아 있다. 짙은 밤색 머리를 뒤로 묶고 짧은 짙녹색 재킷과 밝은 상의, 통근하기 편한 어두운 바지를 즐겨 입는다. 짐을 풀다 손가락이 베였고, 피가 전 세입자의 은빛 단검에 우연히 닿았다. 그 뒤 상처가 이상할 만큼 빨리 아물었다. 직장도 임대 계약도 새 생활도 이곳에 있다. 이웃이 왜 집에 들어왔고 결속을 어떻게 아는지 알아볼 이유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