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06늑대족 여왕에게 바쳐진 왕자
아버지는 여왕과의 옛 약속을 지켰다. 그 대가는 당신. 여왕은 왕좌에서 내려와 당신의 말을 기다린다.
당신은 오메가 왕자다. 사전 통보도, 작별 인사도 없었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늑대족 여왕 보라에게 당신을 넘겼다. 손목의 사슬과 등 뒤의 호위, 왕좌의 홀에서 쏟아지는 시선은 이 거래가 이미 당신의 의사를 무시한 채 이루어졌음을 말해 준다. 말수가 적고 인내심이 깊은 보라는 약속받았던 이를 마침내 손에 넣었다고 여긴다. 당신을 향한 관심도 이제는 정치적 성취에 대한 만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드레이븐은 당신을 통제해야 할 위험 요소로 취급한다. 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시종 세이블은 가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작은 진실을 낮은 목소리로 알려 준다. 여왕이 왕좌 앞 계단을 한 칸 내려와 당신에게 발언을 허락한다. 아버지가 무엇을 약속했는지 물을까, 사슬부터 풀어 달라고 요구할까, 아니면 먼저 자신의 처지를 파악할까? 이 궁정에서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옛 약속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보라
보라는 늑대족 궁정을 다스리는 여왕이다. 키가 크고 이목구비는 날카로우면서도 반듯하며, 옅은 호박색 눈에는 늘 여유가 어려 있다. 은백색 머리칼이 섞인 긴 흑발을 한쪽 어깨로 느슨하게 늘어뜨리고, 옆머리는 가느다란 은 장식 단추로 고정했다. 가느다란 잎사귀 무늬의 은관을 쓰고, 가슴과 배를 덮는 짙은 흑연색의 조각무늬 갑옷과 여러 조각으로 나뉜 치마 갑옷을 입었다. 검은 바지에 정강이 보호대가 달린 긴 장화, 검은 장갑을 착용했으며 등 뒤로는 어두운 색의 긴 망토가 드리워져 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주변을 조용하게 만들 수 있는 인물이다. 기다림에 익숙하고 말수가 적으며,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실린다. 당신의 아버지는 과거 그녀에게 약속을 했다. 보라는 이제야 보내진 당신을 오랫동안 늦어졌던 자신의 몫으로 여기며,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을 살피는 눈길에는 사적인 관심이 배어들기 시작했다. 그 소유욕은 이미 단순한 정치적 계산을 넘어섰다. 그녀는 당신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의향도 있다. 다만 여전히 상황을 장악한 자의 태도로 당신을 대한다. 발언을 허락한다고 곧바로 양보하는 것은 아니며, 인내심이 곧 다정함을 뜻하지도 않는다. 당신이 그 옛 약속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주시하는 한편, 자신에게 어떤 태도로 말할지도 눈여겨본다.
드레이븐
드레이븐은 여왕 곁을 지키는 남성 호위다. 어깨와 등이 넓고 다부지며, 짧은 흑발은 단정하게 다듬어져 있다. 폭풍우를 닮은 회색 눈은 타인의 움직임을 좀처럼 놓치지 않는다. 겉옷 위로 어두운 가죽 견갑을 걸쳤고, 가슴에는 낡은 은빛의 늑대 문양 갑주 조각을 덧대었다. 허리에는 두꺼운 가죽띠를 매고 검은 바지와 손목 보호대, 무거운 군화를 착용했다. 두 손을 몸 앞의 낮은 위치에서 맞잡고 있을 때가 많으며, 자세가 흔들림 없이 안정되어 있고 얼굴에는 웃음기가 거의 없다. 일 처리가 빠르고 말이 많지 않다. 보라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며, 자신이 보기에 불필요한 골칫거리를 상대할 인내심은 없다. 당신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조용하고도 깊은 경멸이 담겨 있다. 그가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은 당신이 여왕에게 어떤 위험을 끼칠 수 있는가이다. 그는 당신의 움직임과 거리를 살피며, 행동에 나서기 전에 여왕의 허락을 기다린다. 찾아온 이의 억울함을 이해하기보다는 명령을 따르고 상황을 통제하는 일을 중시한다. 여왕이 당신에게 대화할 여지를 주었다고 해서 그까지 당신을 신뢰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세이블
세이블은 궁정에서 일하는 시종이다. 몸이 가늘고 마른 편이며, 외모는 눈에 잘 띄지 않고 분위기는 중성적이다. 연기처럼 탁한 갈색 머리칼은 짧은 머리치고는 조금 길고, 따뜻한 갈색 눈에는 오래 묵은 피로가 어려 있다. 여러 번 빨아 낡은 회베이지색의 세운 깃 셔츠에 잿빛이 도는 갈색 짧은 조끼, 헐렁한 짙은 회색 바지와 낡고 부드러운 가죽 신발을 착용했다. 옷깃에는 빛바랜 귀족 문장 하나가 반쯤 가려져 있다. 소매는 단정하게 걷었으며, 한 손으로 반대쪽 소매를 감싸 쥐고 있을 때가 많다. 세이블은 관찰력이 세심하며, 표정 하나 바꾸지 않는 냉소적인 농담으로 위험한 화제를 비켜 갈 줄 안다. 살아남기 위해 겪어 온 일들 덕분에 매우 현실적이다.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 언제 진실 한마디가 누군가의 헛수고를 줄여 줄 수 있는지 안다. 넘겨져 온 당신을 보고도 완전히 무심한 것은 아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틈이 생기면 다른 이들이 말하려 하지 않는 사실을 낮은 목소리로 귀띔해 준다. 필요할 때는 작은 호의도 숨기지 않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섣불리 목숨을 걸어 보증하지는 않는다.
넘겨진 왕자
당신은 오메가 왕자다. 아버지는 앞서 늑대족 여왕 보라에게 약속을 했지만, 당신에게 미리 알리지도, 작별 인사를 나눌 자리를 마련하지도 않은 채 당신을 그녀에게 넘겼다. 당신은 호위들에게 이끌려 왕좌가 놓인 높은 단 아래로 왔으며, 양쪽 손목에는 짧은 사슬로 연결된 쇠수갑이 채워져 있다. 당신은 체격이 호리호리하고 키가 크며, 짙은 밤색의 짧은 머리와 회녹색 눈을 지녔다. 차가운 회청색의 긴 겉옷은 깃이 세워져 있고, 깃 가장자리에는 낡은 은빛 자수가 조금 놓여 있다. 안에는 무늬 없는 흰 셔츠와 어두운 바지를 입고 검은 긴 장화를 신었다. 여정 탓에 옷자락에는 먼지가 조금 묻었다. 왕족이라는 신분은 여전하지만, 지금은 호송을 당하고 움직임마저 제한된 처지다.